잘하고 싶은 게 있다면 겸손해야 한다. 뭔가를 스스로 잘한다고 믿는 순간 발전은 거기서 멈춘다. 나에겐 디자인이 그렇다.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받고 상 받은 걸 자랑하는 것조차 귀찮아질 무렵 내 책엔 먼지가 쌓이고 더는 새로운 걸 배우지 않았다.

새 책을 안 산 지 몇 년이 지나니 평범한 퇴물 디자이너가 돼 있었다. 열정이 식어버린 자리엔 지독한 매너리즘만 남았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 자만심이 내 실력과 열정을 그대로 죽인 셈이다. 처음으로 경력이 쌓일수록 실력이 퇴화하는 경험을 했다.

이미 꺼진 불씨를 되살리긴 어렵다. 그러니 애초부터 그런 일 안 생기게 해야 한다. 이제 다시 디자이너로 살 생각은 없지만, 앞으론 잘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잘한다고 믿지 않기로 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해야 배움의 열망이 있고 꾸준히 정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