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만히 있으면 중간도 못 간다
실책 기록이 많은 유격수는 실력이 형편없는 걸까? 평범한 유격수라면 넋 놓고 지켜볼 공도 탁월한 유격수는 빠른 발을 활용해 공을 터치해 보기라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해서 수비하다가 공이 빠지기라도 하면 자기 실책 기록만 늘어난다. 뛰어난 유격수는 평범한 유격수보다 실력이 월등한데도 실책 기록이 훨씬 많을 수 있다.
환자 사망 기록이 많은 의사의 실력은 어떨까? 매년 수백 건의 어려운 수술을 하는 의사는 환자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애초에 어려운 수술 경험 자체가 적은 의사는 환자를 죽게 할 일도 없다. 단순히 환자 사망 기록이 많거나 실패한 수술 경험이 많다고 해서 실력이 떨어지는 의사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수술 성공률만으로 의사의 실력을 평가할 수 없다.
실패에 유난히 인색한 문화 탓에 우리는 시도조차 꺼리는 심리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은 단순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실패 자체를 피하려는 마음이 크다.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이런 심리를 ‘손실 회피 편향’이란 말로 설명했고 잃는 고통이 얻는 즐거움보다 정서적으로 2배 더 크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모두가 잃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시도조차 안 하는 일이 태반이다. 주식으로 100만 원 버는 기쁨보다 50만 원 잃는 고통이 더 커서 투자를 꺼리는 게 우리의 기본 마인드다. 사업이나 투자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걸쳐 이 관점이 우리 사고를 지배한다. 도전이 꺼려질 때마다 늘 이 불편함을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본능을 역행할 수 있어야 좋은 승부사가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