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위크’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남자 주인공 벤이 여행 중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서 대화하게 되는데 그 남자는 열일곱에 아내를 만나 25년이 된 지금도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 남자에게 벤이 물었다. “진짜 사랑인지 어떻게 알죠?” 남자가 말했다. “그게 궁금하다는 건 진짜가 아닌 거지. 답은 항상 본인이 제일 잘 아는 거니까.”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회의가 든다면 사랑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 만약 한창 사랑에 빠져 있다면 애초에 그런 의문 자체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애매한 걸 판단할 때 이런 개념을 자주 활용하는 편이다. 가령 어떤 물건을 사고 싶을 때 이걸 살지 말지 고민이 되면 안 산다. 구매를 길게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필요성에 의문이 생긴 상황인 거니까.

질문의 존재만으로도 답이 정해져 버리는 셈이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판단할 순 없겠지만, 알쏭달쏭한 상황에서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누굴 만나야 할지 말지 고민되면 만나지 않는다. 뭘 먹을지 모르겠으면 안 먹고. 항상 가장 솔직한 답은 자기 본능이 알려 준다. 단지 이런 방식의 결정을 믿고 따를 용기가 부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