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받았던 메시지 중 가장 웃긴 건 나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냐는 질문이었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질문이다. 세상에 안 어려운 시절이 있는 사람도 있나. 다 자기 나름의 고통이 있는 거지.

심지어 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늘 즐겨보는 인친 님이 요새 사진 업로드를 안 한다든지 턱걸이 개수가 잘 안 늘어나는 고민 같은 거. 물론 이런 걸 고통이라고 하면 비웃겠지만, 세상사 원래 다 상대적인 것 아닌가.

왜 그걸 알고 싶냐고 물으니 내 어려웠던 시절을 알면 본인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걸 독일어에선 ‘샤덴프로이데’라고 한다. ‘타인의 고통에서 느끼는 즐거움’ 정도로 통하는 뜻이다. 내 고통을 통해 위로받고 싶다는 뜻이다.

누가 내 고통스러운 과거를 안다고 본인 삶에 도움이 될 리 없다. 그저 흔한 창업자의 실패 이야기다. 그래도 궁금한 이들이 있다면 난 대학을 자퇴하고 빡세게 돈을 벌었는데 그렇게 번 돈을 사업 실패로 20대에 다 날렸다.

단위도 천 단위가 아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이미 평범한 20대가 겪을 수준의 고통이 아니다. 이 선택은 내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다. 30대 고졸에 무스펙자가 망하면 어디에 취직하겠나. 몸은 튼튼하니 막노동은 잘하겠다만.

나는 더는 실패하면 안 된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한다. 사업 말곤 이 많은 동료를 먹여 살릴 방법이 없다. 투자를 배우는데 집착한 것도 망하면 이거라도 해서 살아남아야지 싶어서였다. 사업은 늘 수시로 위기가 찾아오니까.

직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수천씩 배상해야 할 때도 있고 늘 잘 나오던 수익원이 플랫폼 업체의 정책 변경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지금 잘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매 순간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라는 거다. 방심하지 말고. 관 뚜껑 닫기 전엔 인생은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잘 나갈 때 주위에 베풀어서 덕을 쌓는 것도 다 투자다. 인생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