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다면 그건 버려도 되는 것이다. 진짜 소중한 건 의지만으론 못 버린다. 평소 정리를 자주 하는 편이다. 물건은 나중에 다시 사는 한이 있어도 당분간 쓸 일 없으면 버릴 때가 많다. 연락처도 잘 지운다. 딱히 연락하고 싶은 느낌이 안 들면 과거에 좋은 추억이 있었어도 그냥 삭제한다.

하지만 절대 못 버리는 게 있다. 물건도 인간관계도. 이런 존재들은 역설적으로 다른 걸 쉽게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것만 빼고 나머진 언제든 버려도 되는 거니까. 정리의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내게 남겨진 것만 둘러봐도 내 가치관과 내가 어떤 걸 소중히 하는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거나 곁에 둘 수 없다.

사실 연락처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손해 볼 건 없다. 더 저장해 놓는다고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연락처를 자주 지우는 걸 두고 친구가 왜 그러냐고 핀잔을 준 적이 있다. 이런 건 내가 생각해도 확실히 이상한 면이 있는 습관이다. 그런데 난 연락처를 그냥 지우는 게 아니라 계속 생각하는 거다. 상대와의 관계를.

지우기 전에 이 사람은 내게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계속 생각한다. 이런 고민이 없다면 연락처를 가지고 있어도 영원히 만날 기회도 없고 친해질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들 번호만 저장하고 또 보고 싶은 사람들 연락처만 계속 남긴다. 이것들은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것에 가까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