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부족을 취향이나 성격 탓으로 돌릴 때가 있다. 가령 나는 구속받는 걸 싫어해 결혼 생각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내가 내 이상형이라 상상해 보니 매일 구속받아도 딱히 상관없을 것 같다. 결혼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이상형을 만날 능력이 없어서 결혼이 싫다고 착각한 거다. 현실적인 제약이나 내 능력이 부족해 해결 못 하는 것일 뿐 그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 별로 없음을 깨닫게 됐다.

내가 아무리 구속받는 걸 싫어해도 내 이상형과 결혼하는 거라면 바로 결혼하고 평생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할 거다. 어릴 땐 외국 나가는 게 싫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땐 외국어가 서툴러서 불편한 거였다. 외국 여행이나 출장을 싫어한 게 아니다. 외국어 능력이 생긴 후론 그런 감정이 사라졌는데 이것은 성향 변화가 아니라 성장을 통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힌 것에 가깝다. 이런 사례는 흔하다.

이 관점이 생긴 후론 누가 뭘 싫어한다고 하면 능력을 다시 검토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해결책도 그런 관점에서 찾는다. “그게 그렇게 싫어? 그냥 못해서 싫은 건 아니고?”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원점에서 본인 삶을 성찰하게 된다. 능력이 부족한 건 취향이 아니다. 그냥 능력이 부족한 거다. 내가 그걸 극복할 능력이 없어서 싫은 것인지 진짜 취향에 안 맞아 싫은 것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