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교육이란 선비 교육은 있어도 금융 교육은 없어서 글자는 알아도 숫자는 모른다.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학교에선 글만 가르친다. 이것이 노인 빈곤율을 절반에 이르게 만든 뿌리 깊은 근원이다. 평생 노후 대비가 겨우 국민연금이라니. 심지어 어릴 때부터 돈을 터부시하는 도그마까지 주입한다. 한탕 노리지 말라며 그저 성실하게만 살길 권한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쟁취한 이 중 그런 식으로 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나. 조선의 교육이란 노예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어른들이 주는 거나 얌전히 받고 시키는 일만 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과 머니게임은 못 해도 블러핑 정도는 할 수 있는 거다.

젊은 애들이 애 안 낳고 자기 실속 챙기니 정치권에서 애 한 명 당 1억 타령하고 있지 않나. 만약 우리 어르신 세대처럼 가난해도 참고 살며 그냥 낳고 키웠다면 지금의 지원책이 가당키나 하나. 세대 간 전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어떤 상황이든 원래 정해진 것에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착취당하는 삶을 못 피한다.

변화의 시작은 합리적 의심이다. 은행 직원이 권유하는 상품이 본인의 인센티브를 위한 것인지 고객을 위한 것인지 고민이 있어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조차 없이 살면 매일 조금씩 알게 모르게 착취당할 것이고 그게 쌓이면 나라의 도움 없인 연명도 버거운 삶이 되는 거다. 상부상조 개념을 받아들이기 전에 누구나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산다는 걸 먼저 새겨야 한다. 이걸 나이브하게 여기면 도박판 호구는 본인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