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순서와 배합의 형태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가령 냉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입에 커피를 붓고 얼음을 씹어 먹으면 안 되는 것처럼 같은 걸 해도 제대로 된 순서대로 안 하면 꼬이는 일이 꽤 많다. 하지만 그게 자기 일에선 제대로 안 보이는 게 문제.

예전엔 할 일을 다 마치고 남는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편이었다. 그게 마음도 편하고 프로답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은 건 할 일을 다 마친다는 개념 같은 건 없다는 거다. 특히 자영업자에겐. 난 늘 일이 넘쳤고 끊이지 않았다.

이번 휴가엔 꼭 여행을 가야지,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친구들 만나야지 등 이런 식으로 뭔가 해놓고 여유를 즐기려고 했더니 그런 시간은 영영 안 왔다. 사업하는 동안 출장이 아닌데 외국을 가고 일이 아닌 이유로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어 순서를 바꿔 봤다. 일단 쉬었다. 시간을 정해 놓고 충분히 쉬었다.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놀고 싶은 거 다 놀고 그다음에 남는 시간에 일했다. 이렇게 하니까 습관 자체가 바뀌었다. 적은 시간에 일 효율을 높여야 하기에 정말 딱 필요한 것만 하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일의 분배다.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하다 보니 물리적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그것들을 동료들한테 다 나눴다. 보고 받고 컨펌하는 것도 내가 일일이 챙길 필요 없는 일이라 판단해 웬만한 건 담당자 전결 처리시켰다. 그랬더니 정말 업무 프로세스에 혁명이 벌어졌다.

그동안 월급 주고 나는 사서 고생했던 거다. 맡기면 알아서 나보다 일도 잘하고 에너지 넘치게 잘할 동료들을 놔두고 바보같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보고 할 필요 없는 건 보고도 하지 말고 알아서 하라고 했더니 자기네들끼리 다 처리한 후 결산 때나 내가 알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이 모든 게 순서 하나 바꿨을 뿐이다. 일하고 쉬는 게 아니라 쉬고 일하는 식으로. 중요한 걸 먼저 하는 습관은 여전하지만, 일보단 휴식과 운동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덕분에 일하는 시간은 반으로 줄고 매출은 몇 배가 늘어났다. 인원 구성은 그대로 하면서 순서 하나 바꾼 것으로 혁신한 셈이다.

사업가가 아니면 자유가 없어 적용할 게 없다고 하겠지만, 조금 살펴보면 이게 단순한 일 얘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생관 자체를 바꾸는 이야기다. 일보다 다른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더니 오히려 일이 잘되는 역설을 몸소 체험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커피를 컵에 순서대로 타 먹지 않고 입에 부어 먹고 있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