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맛 우유엔 바나나 농축 과즙이 1%밖에 없다. 하지만 그 1%가 전체를 규정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 차이는 단 1.6%에 불과하지만, 종 자체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어떤 것의 비중으로 전체를 설명하려고만 하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서 아주 사소한 차이로 차별한다. 100m를 뛰는데 고작 0.1초 빨리 들어오는 게 무슨 중요한 일인가? 하지만 0.1초 빨리 들어온 선수는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아주 조금 더 느리게 들어온 선수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잘못됐거나 이상하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평가하지. 바나나맛 우유에 들어간 소량의 농축 과즙은 일반 우유를 바나나 맛이 나게 만든다. 인간과 침팬지의 작은 유전자 차이는 문명을 만든 동물과 야생 동물로 나누고.

그것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수사. 자꾸 이런 구멍을 만들어 논의하는 건 의미 없다. 크게 보면 일부 아닌 게 어딨나. 모든 문제는 항상 일부가 일으킨다. 전체가 다 문제면 그건 그냥 쓰레기고. 기독교는 언제나 일부 목사가 문제지만 전체가 함께 욕을 먹는다. 이런 평가가 그렇게 부당한가?

특성을 나눌 만큼 결정적 속성은 비중으로 평가할 수 없다. 아주 소량이어도 전체를 좌우하는 건 그 자체로 전부를 평가해야 한다. 소량의 청산가리를 넣은 요리는 요리가 아니라 독극물이다. 헛다리 짚고 싶지 않으면 논의는 항상 이렇게 핵심을 다뤄야 한다. 그 비중이 어떻든. 그게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