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두면 사소한 것조차 특별해진다. 암 환자에겐 이번에 피는 벚꽃이 마지막일 수 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느끼는 감흥이 건강한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다.

시한부 인생이 되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가장 자기다워진다. 생의 끝을 알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일지 모른다. 마지막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 가능하니까.

단편 소설을 자주 쓴다. 소설의 소재와 설정은 다양하지만, 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내게 그보다 중요한 주제는 없다. 영화 <파이트 클럽>과 <콜래트럴>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면 무엇을 하는 게 가장 가치 있을까? 삶은 그 자체로 부질없다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게 좀 더 인간답게 살다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죽음의 공포만큼 불필요한 걸 제거해 주는 것도 없다.

산다는 건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 하는 모든 게 언젠가 무로 돌아간다는 걸 안다면 그리 집착하거나 열 낼 이유도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좀 더 즐길 수 있을 뿐.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항상 오늘을 살려고 노력한다. 내일이 없을 수 있음을 알기에 더 과감하고 대범할 수 있었다. 인생이 소음으로 가득 차고 있다고 느낄 때면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을 떠올리면 혼란스럽던 수많은 것이 명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