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시절, 많은 정규직 채용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 아예 관심조차 안 줬다. 난 늘 내가 비정규직이길 원했다. 어느 조직에 속한다는 건 그 조직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얘기니까. 그런 부품 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다.

어차피 돈도 프리랜서로 버는 만큼 맞춰 줄 수 있는 회사도 거의 없었고 고용 상태가 불안하다는 건 내게 ‘열린 기회’에 가깝지 ‘불안한 삶’이 아니었다. 월급이 없다고 걱정한 적은 없다. 늘 남들 월급만큼 매주 벌었으니.

대다수 직장인이 나 같은 마인드로 살 수 없는 건 좀 재수 없는 말이지만, 능력이 부족해서다. 조직에 속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돈 벌 능력이 부족해서. 물론 이건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개인 역량만으로 조직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전문성이란 특별한 거니까. 선택받은 소수의 삶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해고가 살인’이라고 말하는 이는 문자 그대로 ‘회사가 없으면 죽는 사람’인 셈이다.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상황 자체는 그렇다. 해고당하면 죽는 삶, 이미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아니라면 이제부터라도 다른 삶을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해고가 두렵지 않은 삶이 될 수 있게.

왜 학생들이 학창 시절 내내 취직 준비만 하는지 모르겠다. 회사는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자신을 지키는 최고의 무기는 회사가 없어도 되는 나만의 전문성이다. 자립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체 어떻게 하면 기업이 좋아할 인재가 될지에만 골몰하다니. 회사가 뽑아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삶에 자유가 있을까?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사실상 바꿀 수 없는 30대부턴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아직 20대라면 이런 지점을 고민했으면 한다. 앞으로 어떤 역량을 키워 조직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지. 해고가 죽음이라고 느끼며 살 것인지 해고 같은 건 별거 아니라고 여기며 살 것인지. 후자처럼 되기 위해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