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에 안 맞는 게 아니라 그냥 못해서 싫은 거다. 해보니 재미없는 게 아니라 실력이 안 늘어 흥미를 잃는 거고. 이 전제를 인정하기 너무 괴로웠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달까.

디자인을 사랑해 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실력에도 자신 있었다. 입상 경력도 있고 나름 잘 나가는 프리랜서였으니. 하지만 디자인을 잘하는 것과 디자인 회사를 잘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엄청난 착각을 했다.

실력이 없으니 돈을 힘들게 벌고, 돈을 힘들게 버니 잡념이 들고, 잡념이 많아지니 흥미를 잃고. 이 연쇄 작용이 극에 달하면 일하는 의미를 못 찾고 포기하게 된다. 어쨌든 포기의 시작은 늘 실력 부족에 있는 셈이다.

디자인에 매너리즘을 느낀 게 아니라 그냥 회사 운영을 못 한 거였다. 일 자체가 괴로운 게 아니라 실력이 부족해 고통스러운 거였고. 이걸 빨리 파악하고 인정해야 한다. 고통의 근원은 매너리즘이 아니라 실력 부족이란 걸.

실력이 있고 성과가 좋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잠시 투덜댈지언정 일 자체를 그만두진 않는다. 어떤 일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실력이 없어서다. 그래서 직업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휴식이 아니라 실력 정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