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신중한 관찰은 좋은 통찰의 시작이다
어떤 부모가 어린 자식한테 컵라면을 먹인다. 이 장면을 본 누군가가 그런다. “부모가 저러면 쓰나.” 그런데 만약 아이가 편식이 심해 온종일 한 끼도 안 먹어 부모가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라면. 그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외부에서 보는 건 찰나의 순간에 한 단면뿐이다. 사진 속 풍경이 환상적이라고 사진사 상황까지 좋은 건 아니다.
뭔가를 제대로 보려면 여러 번 반복해 봐야 한다. 그래야 맥락이 보이고 그 안에서 드러나지 않던 행간을 읽을 수 있다. 괜찮은 아이디어의 씨앗은 그곳에 있다. 섬세하지 못한 사람은 쉽게 경솔하게 군다. 이분법적 표현을 즐겨 쓰고 정도의 차이를 모른다. 이런 이에게 범죄자는 다 똑같이 나쁜 놈이다. 단순하게 세상을 보니 본인은 편하다.
하지만 이런 뻔한 관점에서 좋은 통찰이 나올 리 없다. 차분히 살피고 신중하게 표현해야 한다. 세상사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절대 악도 없고 절대 선도 없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내가 알지 못한 이면이 있는 거다. 그것을 파악하기 전에 내린 판단은 경솔한 선택으로 돌아온다.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르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다.
신중한 관찰은 좋은 통찰의 시작이다. 섬세함은 디테일에 집중할 때 길러진다. 어떤 주장과 현상의 표면만 살핀다면 보이는 만큼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차분히 관찰한다면 그동안 볼 수 없던 걸 볼 수 있다. 위편삼절, 여러 번 반복해 봐야 이치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통찰력이 생기려면 차분히 지켜볼 줄 아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