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은 읽지 않는다. 내가 편식하는 몇 안 되는 책 부류 중 하나다. 자기 인생을 직접 평가해 기록한다는 건 자의식 과잉이다. 그런 글은 딱히 읽고 싶지 않다. 어떤 사람도 자기 삶을 솔직히 기록할 수 없다. 심지어 거울조차 얼굴을 반대로 보여 준다. 내 눈으론 내 모습을 바로 볼 수 없다.

그나마 누군가 평전 같은 걸 써 준다면 그건 의미 있을 수 있지만, 평전이 나올 만한 위인은 굳이 그런 거 안 써도 기록이 넘친다. 자신에게 한없이 냉정해져야 한다. 자랑하고 싶은 게 열 개면 하나만 하고 당장 감정을 분출하고 싶어도 조금 묵혔다 하고. 이걸 제어하지 못하면 흑역사를 많이 남길 수밖에 없다.

어렵겠지만 나를 식히는 차가움이 내 안 어딘가에 늘 있어야 한다. 남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겸손함, 자기 실력을 객관화할 수 있는 냉정함, 나의 앎과 모름을 구분하는 균형감. 이런 게 바탕이 될 때 자신의 민낯과 마주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남이 꾸미는 것보다 스스로 속이는 게 많을 때 더 천박해지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