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형 흑자’란 말이 있다. 돈을 남기긴 했는데 그게 건전하게 남긴 게 아니라는 의미다. 과거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이란 평가를 받으며 경기침체에 시달렸다. 이때 일본의 불황을 가속한 건 놀랍게도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였다. 흑자란 돈을 남겼다는 뜻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상품 경쟁력이 높아 흑자가 발생하면 좋겠지만, 경기가 얼어붙어 소비가 위축돼 투자, 수출, 수입 감소를 통해 돈을 남기면 이것을 불황형 흑자라 한다. 수출 잘해서 돈 남긴 게 아니라 굶어서 남긴 돈이란 뜻이다. 지출 감소를 통해 이뤄진 흑자는 원화 강세를 불러와 수출 경쟁력을 약화하고 디플레이션을 동반한다.

불황의 사이클을 정리하면 ‘기업의 수익 감소 → 절상된 환율로 기업 경쟁력 약화 → 신규 투자 감소로 경쟁력 약화 → 내수 둔화 및 가계 소득 감소 → 민간 소비 감소 → 내수 하락 → 기업 수익 감소’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일본보다 우리나라는 경기침체 시 파급력이 더 크다.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보다 무서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