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엔 내가 살면서 안 지킨 약속이 없다. 심지어 어디 지각이나 결석을 한 것도 평생 손에 꼽을 정도다. 원래 계획대로 사는 걸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함부로 약속을 안 하는 습관이 제일 크다. 뭔가 흐트러지거나 확신이 안 서는 건 아예 약속조차 안 하니 못 지키는 상황이 거의 없다. 거절을 잘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못 지킬 것 같으면 아무리 친해도 바로 거절한다.

나와 비슷한 업종에서 사업 중인 친구는 직원들이 납기를 잘 안 지켜서 늘 고민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애초에 나 같은 부류만 뽑았기 때문이다. 내 동료들은 첫 미팅 때 대부분 30분 이상 일찍 나왔다. 이런 건 교육의 영역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성향을 타고난 사람만 뽑았다. 성실함은 내가 재능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이다.

약속을 강박적으로 잘 지키는 걸 융통성 부족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고 실제로 그런 평가도 받았지만, 그분들도 중요한 일은 나한테 맡겼다. 신뢰는 조용히 쌓이지만, 인생의 수많은 기회를 좌우한다. 지각 좀 하는 거 별거 아닐 수 있다. 근데 그 사소한 것 하나 못 지키는 사람이 다른 건 잘 지켜줄까? 신뢰도 비용이다. 신뢰하기 어려운 이와 함께하는 건 항상 보이지 않는 비용을 더 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