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종종 세계 여행을 권하셨다. 그때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견문을 넓히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곤 하셨는데 그런 얘긴 창업 전에 들었다면 좋았을 거다. 지금은 내가 일하는 이유가 나 혼자만 잘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서 업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세계 여행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다. 여행을 꼭 몇 년 따로 시간 내서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며칠의 여유만 있어도 갈 만한 곳은 많다. 작년에 위시리스트를 다 지운 후론 따로 작성하지 않았는데 요새 새로 쓰기 시작했다. 주로 지금은 못 하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걸 적어 놓는 중이다. 혹은 반드시 이 시기에 해야 하는 것 위주로.

모솔인 친구가 연애를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게 답답했던 적이 있다. 나는 연애를 통해 인생의 중요한 걸 너무 많이 배우고 깨달아서 친구도 꼭 그런 경험을 해보길 원했다. 물론 친구가 처음부터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일정한 시기를 지나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 됐고 이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경험이 돼버렸다.

‘나이를 먹는 것 자체는 그다지 겁나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건 내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건 어떠한 시기에 달성되어야만 할 것이 달성되지 못한 채 그 시기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에 나오는 구절인데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소리 내서 읽어 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