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는 게 생각보단 나쁘지 않다. 그래도 늙어서 가장 슬픈 건 뭘 해도 거의 재방송 보는 기분이라는 거다. 데이트하다가 망하는 경험조차 재방송 느낌이라 충격도 없고 너무 무덤덤하게 느껴져 그게 더 충격이다. 어릴 땐 연애가 안 풀리면 답답함을 느꼈는데 이젠 체념의 정서에 더 가깝다. 언제부터 포기를 이렇게 잘했나 모르겠다.

연륜 있는 지인을 만나면 무슨 재미로 사는지 꼭 물어본다. 딸 있는 분들은 다들 딸 자랑을 한다. 하도 딸 자랑을 들어서 그런지 나도 딸을 낳고 싶다. 하지만 결혼은 내게 너무 먼 이야기라 일단 접어뒀다. 다른 거 물어보면 딱히 별거 없다. 이미 해봤거나 할 필요 없는 게 대부분이다. 사는 방식을 계속 바꾸려는 건 이런 이유가 크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차원의 야망을 품거나 평소에 안 하던 종류의 도전을 하려는 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서다. 이것에 꽤 강한 의지를 품은 상태라 최근 몇 년은 만나는 사람도 크게 바꿨다. 뭐가 됐든 기존과는 다른 새로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내 인생 최대 적은 매너리즘과 허무다. 이걸 극복하려면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