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다는 말은 자주 듣지만, 실제로 자살 시도까지 한 사연은 흔치 않다. 상담자는 죽고 싶은 마음을 수천 번도 더 먹었다고 한다. 상태로 봐선 내가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만, 상황 설명을 술술 하는 걸 보니 이미 상담은 충분히 해 본 것 같다.

사는 이유를 못 찾아 죽고 싶다고 했다. 표면적인 문제는 별로 없다. 하지만 그냥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진짜 자해까지 하는 수준이다. 인생이 허무해 매일 죽고 싶다는 사람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사람이 자살하는 이유는 다양해 보이지만, 그 뿌리를 보면 몇 가지 안 된다. 그중 압도적인 게 권태다. 어떤 사람은 고통이나 절망이 더 크지 않냐 하겠지만, 죽음에 이르는 수준까지 가는 건 권태가 대부분이다.

전쟁 중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죽음의 공포는 생존 욕구를 극대화한다. 살아남는 게 두려운 사람은 죽음을 고민할 여유가 없다. 권태는 시작은 별거 아니지만, 빠져들수록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

권태는 단순히 뻔하고 반복된 삶에서 오는 매너리즘이 아니다. 오히려 체념을 통해 얻는 자기 만족감이 문제다. 어차피 본인 한계를 넘어설 만한 노력과 변화를 할 자신은 없으니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야 하는데 내면에선 그걸 거부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진짜 욕망을 무시하고 엉뚱한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그런 게 근본적 욕망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인간의 탐욕은 노력으로 채울 수 없을 만큼 깊고 넓다. 마음가짐 따위로 채울 수 있는 속성이 아니다.

기만적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는 이유를 못 찾아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 욕망에 솔직하지 못해 인생이 권태로운 거다. 길에서 개처럼 헐떡대다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면 평생 껍데기뿐인 삶에 만족해야 한다. 자기 욕망에 솔직하지 못하면 늘 자신을 속이며 살아야 한다. 권태의 씨앗은 거기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