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력이 10년도 넘은 파트너사 대표에게 메일을 받았다. 처음으로 주위에 도움을 구한다며 여러 파트너사 대표에게 단체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동안 시도했던 기획이 실패한 과정과 현재 상황 등을 진솔하게 얘기한 후, 앞으로 방향과 전략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어떤 답장을 쓸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보내지 못했다. 이미 늦었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최근 일 년의 변화는 그 전 3년보다 빠르고, 그 전 3년의 변화는 그 전 10년보다도 빠르다. 한 개인이나 작은 회사가 쫓아가기에 너무 버거운 수준이다. 신기술에 겨우 적응할까 싶으면 이미 시장에는 새로운 기술이 나와 있다. 이런 식으로 질질 끌려다니면 결국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파트너사 대표에게 보내려다 보내지 못한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그동안 우리가 변화에만 너무 주목해 쫓아가기 급급했으니 이제는 변화하지 않는 것에만 집중해 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트렌드에 민감한 산업에 종사하면 누구나 변화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계속 쫓아가는 식으로 맞춰나가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뒤처지는 순간이 오고 그 한 번의 위기로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질 수 있다.

변화에 대처하기 버겁다면 반대로 변하지 않는 것에 주목해 보는 건 어떨까? 10년 후에 새로 생길 직업을 예측해 그걸 공부하는 것보다 10년 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에서 전문성을 쌓는 식으로 말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라지만, 인간에게는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것이 있다. 그것을 집중적으로 고민해 본업에 적절히 녹일 수 있다면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미드 <왕좌의 게임>에는 ‘Winter is coming’이라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여기서 ‘겨울이 오고 있다’는 말은 곧 들이닥칠 위험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하라는 의미로 주인공 가문의 가언 같은 말이다. 그런데 너무 자주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물려 버린다. 위기라는 말이 그렇다. 아무 때나 위기라고 위협하면 그게 위기처럼 안 느껴진다. 진짜 위기일 때 써야 말에도 힘이 있다. 이제 이 단어를 써도 괜찮은 때가 온 것 같다.

작년에 오랜 업력의 클라이언트사 몇 개가 폐업했고, 올해도 파트너사를 비롯해 클라이언트사 다수의 폐업이 예상된다. 업력이 오래된 업체 다수가 비슷한 시기에 연쇄 도산한다는 건 그만큼 전체적인 경기가 안 좋다는 의미다. 이런 위기가 우리 업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에이전시가 망해간다는 건 프로젝트 발주 업체도 여유가 없다는 말과 같다. 지금 위기 상황을 모두가 공감하고 느껴야 한다. 실제 발 등에 불이 떨어지면 대처하기 어렵다. 그럴 여유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망한 이야기가 남의 얘기가 아닐 것이다.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는 이미 늦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