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문제는 새삼 새로운 일은 아니다. 보통 도제식 교육 문화가 있는 디자인 같은 분야는 원래 이런 문제가 심했다. 사실 제자들 일 시키면서 최저 시급도 못 주는 한심한 스승에게 배워봤자 배울 게 뭐 그리 있겠나. 현장에서 보면 열정페이 강요하는 놈치고 일 제대로 가르치는 놈 없다.

“경험을 쌓아 취직 기회를 잡고 싶은데 무급이 아니면 인턴 기회조차 주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는 학생들의 절박함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쌓는 경험과 지식은 좋은 게 아니다. 잘못된 환경에서 쌓는 경험은 악습과 왜곡된 지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디자이너에게 열정페이는 절대 받지 말아야 할 돈이라 할 수 있다.

생계가 어려워 부당함을 감내하고라도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낮에 다른 육체적 노동을 해 돈을 벌고, 밤에 공부해서 디자인 역량을 스스로 쌓는 게 더 낫다. 스펙이 부족해 취직이 안 된다면 프리랜서로 시장에서 통할만 한 실력을 먼저 키우고 오는 게 맞다. 그 후에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면서 올바른 습관을 길들여야 오래 일 할 수 있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무엇을 사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보통 회사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게 옳다면 출근해 온종일 한 게 없는 사람은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성과가 없는 사람에게도 월급은 준다. 회사가 사는 건 그 사람의 시간이지 노동력이 아니다. 그러니 가르친다는 핑계로 최저 임금도 안 주는 건 말이 안 된다. 상대의 시간을 썼다면 그 대가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나와 일하는 걸 선심 쓰듯 허세 부리는 고객과 일하지 않았다. 상호 존중은 모든 관계의 시작이자 기본이다. 이런 기본도 안 지키는 부당함을 학생들이 감내하지 않았으면 한다. 경험을 쌓고자 부당함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악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최소한의 기본도 안 지키는 부류한텐 어떤 것도 배울 게 없다. 거기서 쌓는 경험은 오히려 자기 직업을 혐오하게 할 뿐이다. 이런 부당함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프로가 될 자격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