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디자인을 결정하는 게 아니다. 디자인의 최종 결정은 경영진이나 클라이언트가 하는 것이다. 기업에서 제품 출시할 때마다 기사 댓글로 ‘여기 디자이너는 뭐하는 놈이냐’라고 욕하는 사람은 기업의 의사 결정 구조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좋은 시안이 있어도 경영진 판단으로 결정하는데 디자이너가 무슨 권한이 있겠나. 이 평범한 진실을 모르는 학생이 많다는 게 안타깝다. 이걸 빨리 깨우친다면 진로 결정에 도움이 될 텐데 말이다.

원하는 건물을 짓고 싶으면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주가 돼야 한다. 이걸 모르고 ‘내가 원하는 걸 설계’ 하고 싶어 건축과에 간 학생이라면 졸업하고 실망할지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자본이 거의 모든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 내 마음대로 창작’을 하고 싶은 거라면 가장 좋은 건 투자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순수하게 ‘제작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거라면 다르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뭘 성취하는 게 가장 중요한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진로에 관한 상담을 요청하면 항상 이런 식의 결론을 내려준다. “네 능력 중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걸 해라. 그리고 돈 모아서 네가 회사 차려라.”

돈을 많이 벌어 자본가가 되면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시기가 언제든 그건 문제가 안 된다. 물론 이런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직접 의사가 된다거나 파일럿을 하는 건 돈 많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 하지만 돈이 많으면 병원 경영을 할 수 있고, 항공사를 차릴 수도 있다. 극단적인 예긴 하지만. 직접 한다는 즐거움을 못 누릴 수는 있으나 ‘원하는 판을 직접 짤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경영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훨씬 힘이 있다.

디자인을 좋아해 디자이너가 됐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할 게 아니면 회사 소속으로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디자인 회사를 차렸더니 나보다 손재주 좋은 친구들에게 돈 주고 시키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꼭 내가 직접 디자인 안 해도 내 의지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즐거운 일 아닐까.

꼭 의사나 변호사 안 해도 그런 사람들 고용해 좋은 일자리 창출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뭘 해야 할지 고민된다면 가능한 돈 많이 벌 수 있는 걸 골라라. 물론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말이다. 돈 못 벌면 좋아하던 것도 언젠간 싫어지기 마련이다. 대가 없이 무언가 꾸준히 한다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다. 그러니 본인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돈에 초연해선 안 된다. 꼭 돈을 많이 벌어 결정권자가 돼라. 게임판에 플레이어가 돼야 주체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말은 패가 좋아도 자기가 움직이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