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운은 얼마나 중요할까? 디자인 일에 극심한 매너리즘을 느끼던 시기에 호주에 사는 한국인 한 분한테서 메일이 왔다. 선글라스 브랜드를 시작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성심성의껏 답장을 보냈고 그분께선 내 브리핑이 제일 감명 깊었다며 우리한테 로고부터 사이트 제작까지 브랜드 디자인 전체를 맡겼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프로젝트가 잘 된 덕분에 그와 비슷한 수준의 일을 한동안 계속 맡을 수 있었다. 비용을 많이 주면서도 갑질이 전혀 없고 디자이너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준 매우 특별한 클라이언트였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시점에 디자이너 인생 최고의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헌팅을 처음 해봤다. 그리고 3번 연속 실패했다.

그러다 4번째 만난 누나와 대화가 잘 됐는데 그때도 망했다면 평생 헌팅은 안 하고 살았을지 모른다. 뭔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귀인이 등장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고 갔다. 한 달만 메일이 늦게 왔어도. 헌팅을 4번 연속 실패했다면. 사업과 연애를 떠나서 내 자존감과 가치관에 큰 악영향을 줬을 거다. 운의 중요성을 깨달으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게 특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