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이란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일부 학자들은 잘못된 한자 사용이라 지적하지만 난 이 말이 마음에 든다. 해석 자체도 직관적이고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라임이 착착 달라붙어서 좋다. 무엇보다 이런 태도는 내가 늘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영화 ‘스티브 잡스’는 이 사자성어와 그 궤를 같이한다.

자기 관점에 맹렬하게 집착하는 천재 비즈니스맨을 제작진 또한 집요하게 한 가지 시선에서 파고든다.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은 인생 자체가 워낙 비현실적으로 역동적이라 이야기할 거리가 무척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아론 소킨과 대니 보일은 이 구성이야말로 스티브 잡스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영화는 오로지 갈등이란 테마에만 주목한다. 세 번의 역사적인 프레젠테이션 장면 뒷이야기를 다루지만, 정작 프레젠테이션 자체는 한 번도 안 나온다. 잡스와 그 주변 인물의 갈등에만 포커스를 둔 것이다. 한정된 공간에 제한된 인물들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든 그 틀이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의 색깔을 그대로를 드러낸다.

미친 듯이 심플함에 집착하고 사소한 디테일조차 타협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의 일화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몰입이 잘 되는 영화다. 잡스의 철학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잘 아는 나로선 인물의 괴팍함과 갈등보다는 대사와 구성이 더 흥미로웠다. 시종일관 한 방향으로 몰아붙이는 걸 보니 이것이야말로 잡스를 잘 표현하는 방식이구나 싶어 감탄했다.

돈이라면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 자기 신념을 지키고, 비즈니스에 집착할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정말 미치지 않고선 못 하는 일이다. 돈이 없던 시절에도 돈이 아닌 오직 자기 철학과 비즈니스에만 미쳐있던 그 열정이 목표를 달성하게 한 기제가 아니었을까?

융통성이나 타협을 중시하는 나에겐 어떤 의미에선 큰 자극이 된 영화다. 로또 당첨되면 회사 그만두고 여행 다닐 궁리하는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라도 미친 열정을 간접 체험해 보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것도 이렇게 싼 가격에 말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이 한 문장을 스티브 잡스는 삶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