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동은 이성과 감성이라는 두 마리 말에 이끌리는 쌍두마차이다. 하지만 이성은 작은 조랑말일 뿐이고 감성은 커다란 코끼리와 같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흔한 말로 ‘공과 사를 구별하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마치 교과서에 나오는 진리인 양 쓰이는데 이게 정녕 그럴만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 그럴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통해 설득의 기법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가 그것이다. 에토스는 인격이나 명예같이 그 사람의 특징 그 자체를 말하며, 파토스는 공감 같은 감성을 의미한다. 로고스는 이성과 논리를 뜻한다.

상대를 설득하는 데 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 60%, 파토스 30%, 로고스 10%의 비중으로 중요성을 뒀다. 즉 이성과 논리의 비중이 가장 낮다는 의미다. 공과 사를 구별하라는 말은 이성에 바탕을 둔 표현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성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철저하게 감정이 행동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 그럴 필요가 없다
공과 사를 구별하라는 건 그렇게 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모든 행위는 최대 이익을 예상하고 설계한다. 하지만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실증적인 증거가 없다. 왠지 그렇게 하는 게 공명정대해 보여서 하는 말에 가깝다.

이 말은 사실 껍데기만 남은 표현이라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공과 사를 구별하라고 훈계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봐라. 그들이 진짜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공과 사를 구별하라는 메시지는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맨십에 불과하다.

– 그러는 게 낫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낫다. 논리를 떠나 더 끌리는 사람을 뽑고, 더 마음이 내키는 행동을 해라. 어차피 철저한 자료 조사와 전문적인 분석이 없는 한 대부분 감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감은 거의 완벽히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해선 안 된다. 본능은 긴 역사를 통해 오래 훈련된 감각이고, 그 정확성이 이성보다 높을 수 있다. 공과 사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그게 실질적으로 일도 더 잘 되고 효율도 높으니 말이다.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걸 바탕에 두지 않는 말은 현실에서 무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과 사를 냉정하게 구별할 만큼 훈련된 사람이라면 이미 성인군자다. 그런데 우리가 그럴 수 없다는 건 모두 인정할 만한 일 아닌가? 써먹을 수 없는 말로 타인에게 훈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